넘쳐나는 기후 위기에 관한 담론에 비해 생물 다양성 위기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종의 멸종과 서식지 감소는 지구 온난화만큼이나 지구 생명체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UN)은 빠른 조처를 하지 않는 한 수십 년 안에 동식물 백만 종이 멸종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저스틴 로우랏 BBC 기후 전문기자가 아프리카 우간다의 '브윈디 천연 국립공원'의 야생 '마운틴 고릴라' 서식지를 찾아 생물종 다양성 보존 방법을 살펴봤다.
그 건장한 암컷 고릴라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브윈디 천연 국립공원 내 '숑지' 마운틴 고릴라 가족을 이끄는 이 고릴라는 내 존재를 무시한 채 덤불에서 가지를 뽑아 느릿느릿 나뭇잎을 씹어 먹었다. 마치 십 대 청소년이 바삭바삭한 과자 봉지를 뒤적이며 배를 채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새끼 고릴라가 풀숲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가 암컷 고릴라와 내 곁을 지나쳐갔다. 암컷 고릴라가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암컷 고릴라는 내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듯했다. 놀라운 점은 그 고릴라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그 고릴라 역시 날 이해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생물종 간 연결된 감정. 바로 그 덕에 야생 마운틴 고릴라 서식지 방문은 뜻깊은 경험이 된다.
고릴라 가족과 몇 분만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우리와 저들"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모두 대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꽤 최근까지 전 세계적으로 마운틴 고릴라는 멸종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방송인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경은 지난 1979년 마운틴 고릴라 가족과의 만남이 어떻게 "슬픔으로 물들었는지" 회상한 바 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였지만, "가장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최후의 마운틴 고릴라"를 만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고 했다.
애튼버러 경 또한 멸종은 진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종들은 사라지고, 다른 종들은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멸종을 맞이하고 있는 생물종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생물종이 정상적인 '배경 멸종률'(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 생물의 멸종률)보다 1000~1만 배 더 빠르게 멸종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전 세계적으로 공룡 멸종을 일으킨 재앙에 버금가는 규모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 세계의 기능 대부분은 생물 다양성을 그 기반으로 이뤄진다.
또한 생물 다양성 덕에 인간은 오염, 홍수, 기후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회의는 교착 상태로 끝이 났다.
이번 주 대표단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회담을 재개한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최소 30%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총 세부 실천 목표 21개에 합의를 보기 위해서다.
이러한 희망대로 만약 합의를 본다면, 올 10월에 중국 쿤밍에 모인 각국 정부가 서명할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협약에 따른 획기적인 국제 협약의 틀이 마련되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조금 더 높다. 바로 2050년까지 인류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렇다면, 인간이 멸종위기종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운틴 고릴라가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앞서 1979년 에튼버러 경이 고릴라 가족 서식지를 방문했을 당시 남아 있는 마운틴 고릴라는 600마리 정도였다. '심각한 멸종 위기'종으로 등재될 정도였다.
마운틴 고릴라는 특성상 포획 상태에서 생존할 수 없었기에 야생에서의 보호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마운틴 고릴라의 서식지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하나는 우간다,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국경에 걸친 '비룽가 숲'이고, 다른 한 곳이 바로 이곳 브윈디 국립공원이다.
당시 마운틴 고릴라 종이 직면한 문제는 오늘날 많은 멸종위기종이 처한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들의 서식지는 농지 개간으로 빠르게 사라졌으며, 보전 노력은 분쟁 상황으로 여의치 못했다. 또한 밀렵꾼들의 손에 목숨을 잃는 마운틴 고릴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마운틴 고릴라 개체 수는 1000마리 이상이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젠 '멸종위기'종으로 단계가 조절됐다.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마운틴 고릴라 '베이비 붐'이 일어났다. 2020년 말 브윈디 국립공원에서만 마운틴 고릴라 5마리가 태어났다. 2019년에 태어난 마운틴 고릴라 숫자가 모두 합쳐 단 3마리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성공의 비결은 뭐였을까.
1995년 우간다 야생동물관리국의 첫 수의사였던 글래디스 칼레마 지쿠소카 박사는 이후 '공공 보건을 통한 보존'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인물이다.
놀랍게도 지쿠소카 박사는 세심하게 관리된 관광 산업을 그 비결로 꼽았다.
"제대로만 이뤄지면 관광은 정말 야생 동물에 도움이 된다"는 지쿠소카 박사는 그러나 관광 수입이 정말로 지역 사회로 환원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릴라와의 만남을 꿈꾸는 이들은 많다. 실제로 브윈디 국립공원 근처에선 수많은 관광객 숙박시설, 휴게소, 기념품 가게, 트레킹 센터를 찾아볼 수 있다.
지쿠소카 박사는 "처음엔 숙박업소가 5곳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70곳 정도 된다"면서 "이러한 관광객 시설 덕에 일자리가 창출됐고, 비정부 기구(NGO) 단체가 생기면서 일자리가 생겨났다"고 언급했다.
또한 고릴라 관광 상품은 이 전체 지역 경제를 지탱하고 있으며, 관광 수입이 우간다의 야생동물관리국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박사의 설명이다.
넬슨 구마 브윈디 국립공원장 또한 관광 수입으로 지역 사회가 먹고 살기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국립공원 근처에 모여 삽니다. 그래서 지역 사회가 반드시 야생동물 보존의 일부가 돼야 하며, 보존을 통한 이익이 지역 사회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릴라 가족을 만나는 일은 절대 싸지 않다. 우간다의 고릴라를 직접 만나기 위해선 한 사람당 600달러(약 77만원)를 내야 하며, 연간 최대 4만 명까지 방문을 허용한다. 국립공원 수입의 20%는 지역 사회 몫으로 돌아간다.
마운틴 고릴라 보존을 위한 노력의 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선 숲 생태계 전체를 보호해야 한다. 브윈디 국립공원은 지구상에서 가장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곳 중 하나이기에, 이러한 노력 덕에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 종의 다른 생물 또한 덩달아 보존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릴라 관광 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다른 위협요인을 제거하는 데도 사용된다.
마운틴 고릴라는 때때로 밀렵꾼들이 사슴이나 야생 돼지 등 다른 동물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에 잡히곤 했다. 밀렵꾼들은 이렇게 걸려든 고릴라의 고기를 내다 팔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용했다.
그러나 일단 고릴라 관광으로 인한 수입이 중요해지자 당국은 밀렵꾼들에게 차마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내놨다.
국립공원에서 사냥하다 잡히면 감옥신세를 면치 못할 텐데, 밀렵을 그만두면 공원이나 비영리 단체가 지원하는 곳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과거 밀렵꾼이었다던 빈센트 슈마라이루는 "이제 우리는 국립공원의 홍보대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슈마라이루는 이제 영국의 고릴라 보호 단체가 후원하는 농업 프로젝트에서 일한다.
고릴라가 가족의 빛나는 미래를 향한 열쇠가 돼주길 바란다는 게 슈마라이루의 소망이다.
"아이들 모두 학교에 다닌다"는 슈마라이루는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 모두 국립공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러나 관광 산업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관광객은 야생동물과 이들의 자연적인 행동 습성을 교란하고 방해하기도 하며, 이들이 다녀간 곳에 쓰레기가 남는 등 오염의 가능성도 있으며, 지역 문화를 훼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제보존협회(CI), 세계자연기금(WWF) 등 세계 주요 자연 보호 단체들은 유용한 보존 방안으로 '세심히 관리되는 생태관광'을 언급한다.
물론 관광업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지역 사회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음에도 마운틴 고릴라의 개체 수는 여전히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또한 마운틴 고릴라 두 집단이 서식하는 이 국립공원은 넓은 면적을 자랑하지만, 원래 이 지역은 이보다 훨씬 광활한 정글로 뒤덮여 있었다. 이에 따라 고릴라 개체 수는 증가하는데 서식지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타라 스토인스키 '다이안 파시 고릴라 펀드' 대표는 "확실히 고릴라 개체 수가 늘긴 했다"면서도 이에 따라 고릴라들이 "서로 부딪히는 횟수가 빈번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자주 마주치게 되면 공격과 싸움으로 이어지게 되며, 비극적인 결과로 치닫기도 한다.
"마운틴 고릴라의 새끼 살해 비율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이게 되면 아주 어린 새끼 고릴라들이 종종 살해당하곤 합니다."
'다이안 파시 고릴라 펀드'의 연구에 따르면 비룽가 숲 일부 지역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고릴라 개체 수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한다.
스토인스키 대표는 "마운틴 고릴라 수는 늘고 있지만, 계속 증가하기 위해선 이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고릴라를 위한 땅을 남겨두는 것이다. UN이 전 세계에 촉구하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장 생산성이 좋은 토지를 내놓는 데에는 대가가 들며, 개발도상국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발도상국은 보존 사업 지원을 위해 선진국이 매년 10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엘리자베스 므레마 UN 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은 마운틴 고릴라 보존 성공 사례는 우리가 멸종 직전의 다른 종들 또한 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므레마 의장은 이번 주 나이로비에서 대표단을 만나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이제 세계는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기꺼이 투입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과학자들은 생물 다양성 위기가 금세기 내에 해결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말한다. 제2의 지구는 없다"는 게 므레마 의장의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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